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주 구원전 (문단 편집) === 조조의 구원 === 유대가 죽고 난 후 [[진궁]](陳宮)이 조조에게 말했다. >"지금 주(州)에 주인이 없고 왕명(王命)이 단절되었습니다. 저 진궁이 가서 주(州) 사람들을 설득케 하시고, 명부(明府-주목, 태수 등에 대한 존칭)께서는 뒤이어 와서 주목에 오르시어 천하를 거두는 데 바탕으로 삼으십시오. 이는''' 패왕(霸王)의 업(業)입니다.'''[* 이 부분의 발언을 잘 생각해보면 진궁은 앞으로 작금이 [[난세]]인만큼 정치와 군사가 [[패도]]로 가야한다는 뜻이다.] " 진궁이 (연주의) 별가, 치중을 설득하며 말했다. >"지금 천하가 분열되었는데 주(州)에 주인이 없소. 조동군(曹東郡-동군태수 조조)은 명세지재(命世之才-세상을 바로 잡을 인재)이니 만약 그분을 맞아들여 주목으로 삼는다면 필시 생민들을 평안케 할 것이오." 포신 등이 또한 이를 옳다고 여겼다. 이에 포신은 주리(州吏-주의 관리) 만잠(萬潛) 등과 함께 동군으로 가서 조조를 맞이해 연주목을 겸하게 했다. 그리고는 진병하여 수장(壽張-동평국 수장현) 동쪽에서 황건적을 공격했다. 포신은 힘써 싸우다 전투 중에 죽었고 가까스로 이들을 격파했다. 조조가 보기 천여 명을 이끌고 전지(戰地)를 시찰하다 갑자기 적의 둔영에 맞닥뜨려 싸웠으나 불리하였다. 죽은 자가 수백 명에 이르니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적이 뒤이어 전진했다. 황건은 도적이 된 지 오래고 여러 차례 승세를 탔으므로 병사들이 모두 정예하고 사나웠다. 조조의 군사들은 오래된 군사가 적고 신병(新兵)들은 제대로 훈련 받지 못했기에 전군이 모두 두려워했다. 조조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친히 장사(將士-장병)들을 순시하며 상벌을 분명히 권하니 군사들이 다시 기세를 떨쳤다.[[http://sjcnc.kr/board/sjcnc_info_04/91|.]] 그 기세를 이어 토격(討擊)하자 적들이 점차 꺾이어 물러났다. 이에 적이 조조에게 서신을 보내 말했다. >"예전에 제남(濟南)에서 신단(神壇)을 허물어뜨렸을 때는 그 도(道)가 중황태을(中黃太乙)과 같아 그대가 도를 아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다시 미혹(迷惑)되었구려. 한(漢)의 운수가 이미 다하고 황가(黃家)가 설 것이니, 하늘의 대운(大運)은 군(君-그대)의 재능과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오." 조조가 격서(檄書)를 읽고는 이를 꾸짖으며 욕했다. 여러 차례 항복할 길을 열어 보여 주고는 기병(奇兵)과 복병(伏兵)을 설치했다. 밤낮으로 어울려 싸워, 싸울 때마다 번번이 포로로 사로잡히자 이에 적들이 퇴주(退走)했다. 포신의 상(喪)을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자 사람들은 나무를 깎아 포신의 형상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곡(哭)을 했다. 황건적을 추격해 제북(濟北-연주 제북국)에 도착하자 (황건적들이) 항복을 청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